완성의 기준이 달라진 2023년

완성의 기준이 달라진 20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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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고 나서야 보이기 시작한 것들

준비가 끝나기 전에

2023년 3월, 대학생으로서의 삶을 마치고 내 길을 직접 정해야 했다.

비전공자였지만 졸업 전부터 프론트엔드 개발자가 되겠다고 결심했고, 이론 강의와 클론 코딩 강의를 들으며 기본적인 웹 프론트엔드 기술을 배웠다. 깊이 있는 이론을 안다고 말하기는 어려웠지만 배운 기술로 내 프로젝트를 시작해 보고 싶었다.

정해진 환경에서 주어진 문제를 푸는 일은 해봤지만, 이제는 무엇을 만들지 스스로 정하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의 해결 방법도 직접 찾아보고 싶었다.

블로그 프로젝트 시작

많은 고민을 뒤로하고 무작정 도전을 시작한 그때의 내가 너무 고맙다.

많은 고민을 뒤로하고 무작정 도전을 시작한 그때의 내가 너무 고맙다.

“프론트엔드 개발자라면 본인만의 블로그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 생각으로 블로그를 만들기 시작했다.

3월부터 4월까지 평일에는 블로그 프로젝트에 몰입했고, 클론 코딩을 할 때는 만나지 못했던 문제들이 계속 나타났다. 예상하지 못한 환경에서 문제를 하나씩 해결하면서 개발의 새로운 재미를 느꼈다.

“이 블로그에 이런 기능을 추가하면 어떨까?”, “사용자들이 이런 것을 느낄 수 있게 만들면 어떨까?”

누가 정해준 과제가 아니라 내가 떠올린 질문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구현해야 할 기능을 따라가는 것과 무엇을 만들지 직접 고민하는 일은 꽤 달랐고, 생각할 것이 많아진 만큼 더 몰입할 수 있었다.

완성하고 처음 받은 질문

완성했던 당시에 굉장히 뿌듯했던 블로그 프로젝트

완성했던 당시에 굉장히 뿌듯했던 블로그 프로젝트

처음으로 완성한 사이드 프로젝트는 잘 작동했고, 공부한 것으로 내 것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기뻤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블로그를 소개했다.

그때 늘 솔직하게 말해주는 고마운 지인이 물었다.

"근데, 이 블로그는 어디에 검색해야 나오는 거야?"
"이 부분이 무슨 기능인지 잘 모르겠어"

개발에 관심이 없는 지인들은 대부분 좋은 점을 먼저 이야기해 줬는데, 그래서인지 이 질문들이 더 정확하게 들렸다.

내게는 익숙한 기능이었지만 처음 방문한 사람에게는 무엇을 하는 기능인지 알기 어려웠다. 내가 알고 있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도 당연히 알 것이라 생각했고, 프로젝트를 만드는 동안 불편함을 느낄 사람의 관점은 거의 고려하지 않았다.

개발자에게 편한 방식이 사용자에게도 편한 것은 아니었다.

지인 한 명이 잠깐 사용했을 뿐인데도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처음으로 완성했다는 사실에만 만족하고 끝내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그때부터 ‘블로그 서비스’에 무엇이 필요한지 다시 생각했다. 검색 엔진 노출과 동적 메타데이터처럼 부족한 부분을 정리한 뒤, React로 다양한 렌더링을 간편하게 구현할 수 있는 Next.js를 선택했다.

Next.js를 이용한 개발 일지는 너무 길어져서 포트폴리오 링크로 대신한다.

일하면서 다시 보인 것

5월이 시작되고 운이 좋게도 블록체인 스타트업에 처음 취업했다. 블로그 프로젝트를 만들며 보여준 자신감이 좋은 인상을 주었다고 했다.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걱정이 있었다.

“내가 돈을 받으며 일을 해도 괜찮을까?”

걱정도 있었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동료들과 일하며 무엇을 배우게 될지는 기대됐다.

첫 출근 이후에는 회사의 코드와 도메인을 파악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았다. 개발팀은 블록체인 개발자와 백엔드 개발자, 그리고 나까지 세 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개발팀이 굉장히 자유롭고 편한 환경을 만들어 준 덕분에 실수할까 봐 긴장하는 신입의 모습에만 머무르지 않고, 프론트엔드 개발자로서 주도적으로 나서서 일할 수 있었다.

회사에서는 혼자 프로젝트를 만들 때와 다른 종류의 문제를 만났고, 여러 문제를 해결하면서 번들러, CI/CD, 최적화처럼 프론트엔드 개발자가 다룰 수 있는 영역들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숨기고 싶었던 첫 결과

7월에는 달라진 시선으로 기존 블로그를 다시 봤다.

처음 완성했을 때는 굉장히 뿌듯했던 프로젝트인데, 몇 달 뒤 다시 보니 수정할 부분이 너무 많았다. 이런 블로그를 내놓았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GitHub pin을 잠시 내리기도 했다.

그래도 프로젝트를 그대로 방치하지는 않았다. 보이기 시작한 문제들을 하나씩 리팩토링하고 업데이트했다.

과거의 결과가 갑자기 나빠진 게 아니라,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이제 보이기 시작했다. 업데이트할 부분이 많다는 것은 새롭게 시도할 것이 많다는 뜻이었고, 리팩토링할 부분이 보인다는 것은 이전보다 나은 방법을 알게 됐다는 뜻이었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pin은 내렸지만 결국 다시 프로젝트를 열어 고쳤고, 당시에는 그 행동에 더 의미를 두고 싶었다.

지나간 프로젝트를 방치하지 않고 신경 써준다는 건, 그만큼 진심이라는 것이다.
발전 없이 시간만 허비하는 가짜 실패, 주위의 말만 듣고 시도하지도 못했던 오래전의 나보다,
계속해서 도전하고, 실패하는 내가 자랑스럽다. 이 마음가짐을 잊지 말자.

세상은 그대로, 달라진 건 나의 주관

회사를 다니며 프론트엔드 개발자로서 가장 크게 달라진 부분은 사용자 경험을 바라보는 태도였다.

회사를 다니기 전에는 우선 기능을 완성하는 데 집중했지만, 지금은 기능이 작동하는 것만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어디에서 멈추고 무엇을 불편해할지도 생각한다.

처음 블로그를 보여줬을 때 지인이 남긴 질문도 이제는 다르게 보였다. 기능을 만들었다는 사실보다, 설명하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했다.

내가 사용자 경험에 집중하고 싶은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만든 작은 기능 하나라도 사람들이 더 편하게 사용하길 바란다.

작은 배려에서 본 것

얼마 전 턱 디스크 때문에 치과에 갔을 때의 일이다.

의사 선생님께서 치료를 마치시고,
턱 디스크 환자가 지켜야 하는 생활 수칙들을 읽기 쉽게 정리해 주신 종이를 한 장 주시며,
내가 인지하지 못했던 환자가 궁금해할 만한 부분들을 설명해 주셨다.
계산을 마친 프론트 데스크에서, 직원이 친절하게 웃어주시며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말과 함께 2024년 달력을 주셨다.
그렇게 치과를 나오면서,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네이버 영수증 리뷰를 써본 것 같다.

의사 선생님은 이미 본인의 일인 치료를 마쳤으니 거기에서 끝낼 수도 있었다.

그런데 내가 미처 떠올리지 못한 궁금증까지 먼저 설명해 주시고, 환자가 지켜야 할 생활 수칙도 읽기 좋게 정리해 주셨다. 종이 한 장 너머로, 왜 이런 내용을 정리하고 먼저 설명해 주셨을지 그 마음까지 생각하게 됐다.

프론트 데스크에서 건넨 웃음과 새해 인사, 2024년 달력도 마찬가지였다. 작지만 세심한 배려를 경험한 뒤 이 치과를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살면서 처음으로 네이버 영수증 리뷰까지 남겼다. 내 리뷰를 본 다른 사람이 치과를 방문할 가능성도 생겼다.

사용자 경험이 서비스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직접 느낀 순간이었다.

“작은 배려를 받고 나니, 나도 누군가를 덜 헤매게 하고 싶었다.”

사람을 직접 만나 베푸는 친절이 있다면, 사용자의 편의를 고려한 UI를 만들고 불편함을 줄이는 라이브러리와 자동화를 만드는 일도 내가 할 수 있는 친절이라고 생각한다.

직접 얼굴을 마주하지 않더라도 누군가가 덜 헤매고 조금 더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한 번 더 생각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런 친절을 베풀고 싶다.

다시 준비하는 시간

5월부터 10월까지 이어진 첫 회사 생활을 마치고, 11월에는 새로운 도전을 준비했다.

그동안 밀렸던 스토리 게임의 엔딩도 보고,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쉬기도 했다. 충분히 휴식한 뒤 12월부터 본격적으로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준비했다.

처음에는 이력서를 새로 만드는 일이 금방 끝날 거라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예상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일주일 내내 작성한 이력서를 전부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쓰기도 했다. 지나치게 미니멀한 형식을 고집하다 내가 해온 일을 제대로 담지 못했고, 추상적인 주장만 적어 읽는 사람에게 의구심을 남기기도 했다.

이력서도 블로그와 비슷했다. 내가 보기 좋은 형태와 처음 읽는 사람이 이해하기 좋은 형태는 달랐고, 무엇을 했는지는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지만 알고 있다는 이유로 설명을 생략하면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전달되지 않았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이력서는 완성했지만, 자바스크립트 이론과 관련 지식, 알고리즘 공부처럼 아직 준비해야 할 것이 남아 있다. 여기에 많은 시간을 투자할 예정이라 재취업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2023년이 끝나는 시점에도 다음 도전은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남은 준비를 하나씩 이어가는 일이었다.

마치며

2023년을 시작할 때 내 기준은 ‘완성’에 가까웠고, 처음으로 프로젝트를 끝까지 만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뻤다.

그 블로그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회사에서 새로운 문제를 만나고, 치과에서 작은 배려를 경험하면서 보는 것이 조금씩 달라졌다. 이제는 무언가를 만들었다는 사실만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어떻게 느낄지도 생각하게 됐다.

물론 이 과정이 늘 자랑스럽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처음 만든 결과를 숨기고 싶어 GitHub pin을 내렸고 일주일 동안 쓴 이력서를 전부 지우기도 했으며, 재취업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도 여전히 많이 남아 있었다.

그래도 먼저 만들어봤기 때문에 무엇이 부족한지 알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의 반응을 들었고,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문제를 직접 고쳤다.

2023년은 모든 준비를 끝낸 해가 아니라, 잘 모르는 상태에서도 내 길을 처음 만들어본 해였다. 내 관점 안에서 완성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생각하기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그래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작은 다짐

블로그

  1. 블로그를 Next.js App Router를 이용해 새로 리팩토링할 것.
  2. 블로그에 더 깊이 있는 글을 쓰고, 내 생각을 담은 글도 꾸준히 작성할 것.
  3. 블로그 익명 댓글 테러 방지 알고리즘을 구현할 것.
  4. 취직에 성공하면 바로 블로그 도메인을 구매할 것.

개인

  1. 일에 몰두하느라 내게 많은 것을 베풀어준 사람들을 잃지 말자. 받은 이상으로 돌려주자.
  2. 운동은 꼭 하자. 몸이 너무 말랐다.
  3. 알고리즘은 하루에 하나씩 꼭 풀자.
  4. 한 달에 한 편 영화를 보고 왓챠피디아에 코멘트를 작성하자.

긴 글을 읽어줘서 고맙다.

2024년에는 원하는 것들을 모두 이루고, 행복한 한 해를 보내길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