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 뒤에 미뤄 둔 일
내가 가장 잘한다고 여긴 일을 AI가 더 잘하는 듯했다. 두렵고 불안했다. 코드를 만들고 개발 방법을 나누던 문화의 의미가 앞으로도 같을지 의문이 들었고, 개발자라는 익숙한 역할도 함께 흔들리는 기분이었다.
내게 개발은 오래 쌓아 온 능력이었다. 동시에 사람의 문제보다 내가 다루기 편한 영역이기도 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이해하는 일에 비하면 코드를 이해하고 문제를 푸는 일이 편했다. 그런 일 앞에서 나는 개발이 내게 주어진 임무라고 생각하며 한 발 물러나곤 했다.
AI가 흔든 것은 코드를 쓰는 방식만이 아니었다. 익숙한 역할이 흔들리자 그 뒤에 미뤄 둔 일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선명하게 보인 것은 나를 드러내는 일이었다.
사람 앞에서 내 생각을 말하는 일. 부족한 모습으로 평가받는 일.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일.
링크드인은 가입조차 하지 않았다. 외부 발표를 해 보고 싶었지만 긴장하고 평가받는 장면이 먼저 떠올랐다. 새로운 일을 전부 피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피한 것은 도전 전체가 아니라, 내 생각을 사람들 앞에 꺼내고 부족한 모습으로 평가받는 자리였다. 개발은 그 두려움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기 좋은 역할이기도 했다.

기다리던 자리를 먼저 만들었다
AI에 관한 정보를 얻으려고 여러 밋업에 다녔다. 발표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부러웠던 것은 발표 내용만이 아니었다. 자기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 사람들 앞에 꺼내 놓는 힘. 나는 그 행동력이 부러웠다.
그런 동료와 환경이 내게도 주어지기를 기다렸다. 자리가 먼저 생기면 나도 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했지만, 계속 기다리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이번에는 환경을 조금이라도 직접 만들어 보기로 했다. 내가 좋다고 생각한 개발 방법과 내 관점으로 풀었던 문제를 먼저 꺼내기로 했다. 좋은 경험을 조직에도 전하고 싶었고, 나도 무대에 서 보고 싶었다. AI 변화에 뒤처질 수 있다는 조급함도 섞여 있었다. 어느 하나만 진짜 마음이었던 것은 아니다.
팀장에게 사내 발표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개발자들만이 아니라 회사 사람들을 대상으로 발표하고 싶다는 요청도 덧붙였다. 제목은 하네스 엔지니어링, LLM이라는 야생마를 이끄는 힘.
내 목소리를 녹음하며 말투와 목소리, 자신감 있는 태도를 연습했다. 내가 좋은 환경이라고 느낀 회사의 사례도 조사했다. 준비는 앞으로 나아갔지만, 괜히 일을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도 나란히 따라왔다.

준비하지 않은 행동
연습할 때와 실제 발표는 달랐다.
발표가 이어질수록 시선은 어느새 노트북 화면 아래에 붙었다. 다시 화면 뒤로 숨는 중이었다.
뭐라도 해야 했다.
순간적으로 “흐앗” 하고 기합을 넣듯 소리를 냈다.
모두의 반응이 같지는 않았다. 몇몇은 놀랐고, 몇몇은 웃었다. 응원의 눈빛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여러 표정 사이에서 잘 들어주는 한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그 한 사람의 표정만 보고도 긴장이 풀렸다. 다시 발표를 이어 갈 수 있었다.

안 하던 짓의 기억
발표가 끝나자 후련했다.
발표를 들은 팀원 중에는 하네스를 바로 적용한 사람도 있었다. 발표가 나쁘지 않았다는 말도 들었다.
발표 한 번으로 회사 문화가 달라진 것도, 내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도 아니다. 다만 두려운 채로도 먼저 움직여 본 기억이 남았다.
그 기억은 다음 낯선 선택 앞에서 조금 덜 망설이게 했다. 해커톤에 도전한 것도 예전의 나라면 피했을 선택이었다.
“바보 같은 나를 표현하는 일을 더는 피하고 싶지 않다.”
발표는 여전히 긴장된다. 그래도 앞으로 또 어떤 안 하던 짓을 하게 될지, 이제는 조금 기대된다.
